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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전남 장성 무료 별장

NewULife LEGENDARY 2006. 8. 17. 10:12
별장·미술관 지어 누구나 대접하는 변동해씨 /

“전남 장성에 가면 산속에 참숯과 편백나무와 황토와 죽염까지 써서 손수 별장을 지어 놓고 누구나 와서 쉬라고 열쇠를 100개나 나눠준 사람이 있대.” “뭐 하는 사람인데? 아주 부잔가보네?”

어느 주말, 우연찮게 들려온 소문과 호기심에 이끌려 한번 가보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10분 남짓,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은 ‘금곡 영화마을’ 안내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니, 맨 꼭대기에 ‘소담한’ 시골집이 한 채 서 있다.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이라 쓰인 나무 팻말 위에 깨진 기와 한 장을 올려놓은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언능 들어옷쇼잉, 먼 길에 여까정 오느라 애썼소.” 어제 본 듯 반겨주는 이가 바로 세심원지기인 청담 변동해(52)씨였다. 반바지에 흰고무신 차림이 영락없이 동네 고샅길에 마을 나온 중년 아저씨다. 현관문을 열자 확 풍겨나는 편백나무향과 반닫이 위에 떠놓은 정한수 한 잔이 절로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방명록은 없고, 지금꺼정 받아논 명함만 4천장이 넘드만요.” 1999년 7월 완공해 개방한 이래 꼬박 7년간 어림잡아 1만5천명쯤 다녀갔단다.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을 따라 온 발길들이다. “첨부터 나는 관리인일 뿐이고, 쉬러 오는 사람들이 주인이란 맴으로 대한께 그런가 한번 연을 맺으면 꼭 다시들 옵디다.” 청담이 짐작하는, 소문난 이유다.

» 세심원과 금곡숲속미술관 지기로 문화사랑방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변동해씨. 세심원 거실에서 광주 요델협회 회원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저짝 황토방을 따땃허니 데펴놨응께 건너갑시다.” 잇대어 지은 별채의 쪽마루에 올라앉으니, 아래서는 낭랑한 계곡물 소리가 올라오고 첨성대를 닮은 굴뚝 위로는 총총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 존 것을 나 혼자만 누리믄 쓰것소?”

이튿날 광주에서 요델협회 회원 가족들 20여명이 와서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이날 직접 농사지어 만든 흑보리쌀 고추장과 죽염된장으로 끓인 무시래깃국, 부인이 담가준 ‘전라도 김치’, 야생 죽로차로 줄잇는 식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지난 2월 버려진 마을 구판장을 개조하고 평생 모은 소장품을 내걸어 ‘금곡 숲속미술관’까지 문을 연 청담은 요즘 또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세심원과 미술관에서 음악회나 강연회, 다도와 명상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문화의 향기를 더 멀리 퍼뜨리는 것이다.

‘장성 토박이 황주 변씨, 농고 출신, 2005년 장성군청 민원팀장(계장)으로 30년 만에 명예퇴직, 읍내 25평짜리 빌라 거주, 소형 트럭 보유.’ 지극히 평범한 이력의 서민인 그가 이처럼 재벌들도 따라하기 힘든 ‘만인의 별장’에 ‘문화사랑방’까지 꾸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와 인연으로 인근 ‘휴휴산방’에 자리를 잡은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씨는 “사주에 불이 유난히 많고 물은 없어 호를 ‘청담’으로 지어줬다”며 “청렴하게 공덕을 쌓아 유명한 선대의 가풍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풀이한다. 정작 청담의 답은 간단하다. “돈보다 정성으로, 혼자보다 여러니, 쟁이기보다는 퍼주고 사는 것이 행복허지 않소?”

장성/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마음 씻으러 온 객들이 주인 - ‘만인의 별장’ 세심원 이야기 /

‘아니온듯 가시옵소서’, 세심원의 한쪽 서까래 밑에 걸려 있는 목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마음을 씻고 가는 것이니 흔적을 남길 것도 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세가지가 없다. 시계, 달력, 텔레비전. 대신 세가지 금기는 있다. 술과 고기, 휴대폰이다. 도시와 일상에서 묵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1999년 문을 연 초기엔 멋모르고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며 어지럽힌 객들도 없지 않았지만 “집 기운에 눌린 듯” 지금껏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 축령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심원 별채 황토방의 쪽마루와 굴뚝, 오른쪽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멀리 산 아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누에치던 움막 10여년 손수 개조
숯·편백·황토·죽염의 자연주택
7년간 1만5천여명 발길
사용료 안받고 음식까지 챙겨놔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축령산 자락의 산골에 세심원이 자리잡게 된 내력은 제법 길다. 지난 80년 9급 공무원이던 (청담) 변동해씨는 우연히 구입한 터에 쓰러져 가고 있던 누에치는 잠실을 10여년에 걸쳐 소일 삼아 직접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대대손손 토박이에 생활민원 담당을 해 ‘발이 넓었던’ 그는 96년 무렵 지역의 숯굽는 장인과 함께 주민 소득증대 사업으로 ‘숯공예품’을 개발하고 덜컥 공장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장사와는 인연이 없어, 곧 문을 닫는 바람에 숯만 창고 가득 남았다. 마침 축령산에는 국내 유일의 50년생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간벌 때마다 쓸만한 목재들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은 숯 2톤을 바닥에 깔고 그 위 마루를 편백으로 깔았다. 벽은 죽염을 섞은 황토로 발랐다. 독특한 편백향 덕분에 모기나 벌레도 없고, 숯이 습기를 머금어 종종 비워놓아도 늘 실내가 고슬고슬한 말 그대로 ‘웰빙자연주택’이 탄생한 것이다.

방 3칸·부엌 겸 거실·욕실 1칸, 황토방 별채 2칸, 다 지어 놓고 보니, “평생 전원의 삶을 꿈꾸면서도 엄두를 못내는 월급쟁이들과 함께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맞고 인연 닿는 지인들에게 열쇠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용료 같은 건 애초 받지 않았고, 쓰레기 처리가 골치 아파 되도록 먹을거리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대신 쌀과 김치, 밑반찬을 냉장고에 구비해놓고 알아서 챙겨 먹도록 ‘부탁’했다.

세심원은 지역의 명소를 넘어 씨를 퍼뜨리고 있다. 지난 2월 경북 청도에서 버섯농사를 하는 박복규씨가 ‘길상원’을 열어 교류하고 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2005년 2월 30년9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을 한 그는 세심원지기로 새로운 출퇴근을 하면서 황토방의 군불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정성만으로, 그 큰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그의 퇴직 이후부터 방문객이 급증하자 월 25㎏씩 쌀을 보내주거나 감사 편지와 함께 봉투를 남겨두고 가는 자발적 후원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기는 하다.

“남매는 다 자라 지 앞가림허니께, 많지 않은 연금이지만 관리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지라우.” 옆에서 말없이 웃어주는 부인의 이해심이 세심원을 지켜온 또다른 힘인 듯했다.

 

금곡숲속미술관이야기
문화 모르믄 촌사람잉께 기냥 들와서 보시요

» 금곡숲속미술관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나 영화마을 구경왔다 우연히 들른 관광객들이나 소담한 초가지붕 한옥 갤러리의 운치와 갖가지 내력을 지닌 작품들의 품격에 놀란다.
“사람들이 미술관 문턱서 겁 먹고 고갯짓만 슬끔 하고 가불더라구요. 기냥 쑥 들와서 보믄 좋을텐디, ‘미술 콤푸렉스’가 엄청나두만요. 그랴서 차근차근 일러주다 보니께 인자는 민중갤러리의 농민 큐레이터라고들 허네요.”

‘문화 보시’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청담 변동해씨의 열정과 지극 발원(?)으로 문을 연 ‘금곡 숲속미술관’은 세심원과 더불어 장성의 또다른 명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월 개관 기념잔치 때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이 넘는 하객들이 몰려와 2.5㎞ 진입로가 막힐 정도였다.

미술관은 겨우 30여평에 불과한 단층 초가한옥, 청담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소담’하다. 2년 넘게 버려졌던 마을 구판장 건물을 한 달에 걸쳐 개조한 것이다. 세심원을 즐겨 찾는 광주의 한 건설업체 대표가 조명과 전기시설 공사를 하고, 자신은 그림·장식물·진열장 등 전시 컬렉션을 도맡았다. 숯 위에 편백나무 마루를 깔아 세심원 분위기를 그대로 옮겼고 2평짜리 방과 화장실, 개수대도 갖춰 묵을 수도 있다.

전시작품은 25점 남짓, 그렇다고 허접한 시골미술관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가인 황순칠씨, 조계종 4대 종정 서옹 큰스님, 한국화 대가 남농 허건, 아산 조방원, 현당 김완영 등 호남 남도 화맥을 이끄는 대가들의 산수화와 선필들이 나란히 걸렸다.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동심 그림도 시선을 붙든다. 운암 조용민씨의 글은 일본 여행길에 붓이 없어 목욕 수건 네귀를 묶어 쓴 것으로 ‘프로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걸작이다. 100여년 전 청담의 고조부 때부터 사랑채에서 쓰던 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로와 고사한 오수목 조각들, 300년 묵은 먹감나무 판으로 만든 다상이 운치를 돋운다. 하지만 청담은 작품들의 값을 모른다. 산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쌓은 교분으로 하나둘 얻은 것들이니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다.

마을 구판장 개조한 초가집에 친분 예인들 작품 걸고 설명까지
‘민중갤러리 농민 큐레이터’ 소문, 문화사랑방 키울 후원회 채비중

입소문을 따라 1주일에 150명 안팎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데 힘입어 전시 일정도 하나둘 잡히고 있다. 오는 10월 말 황순칠씨의 초대전, 내년 생태미술 기획전, 김문호씨의 천탑전 등을 준비 중이다. 가을부터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술관 앞마당에 창작공간도 지을 작정이라니 그의 문화 보시행은 끝이 없어 보인다.

» 금곡숲속미술관 밖 전경.

“여그 시골 사람들은 손재주든 소리든 다 한가락씩 하는 쟁이고 예술가”여서 일년 열두달 채울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세심원과 달리 미술관은 그의 열정만으로 꾸려가기에 벅찰 수밖에 없다. 작품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유지는 물론 보안 시설 관리비 등으로 한달에 최소 150만원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월 1만원 후원회’를 꾸릴 참이다.

“지아무리 잘 묵고 잘 산다 해도, 나라에 ‘문화’가 없으면 난장판이 되지 않겄소.” 비록 산골 구석이지만 문화사랑방지기가 되고자 하는 청담의 안목은 넒고 크다.

노형석·김경애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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