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 돈이다(2)-역사에서 배우는 협상
"창의력이 협상 성패 좌우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캠프데이비드 협정, 그리고
고려시대 서희와 거란장수 소손녕 간의 담판. 동서고금을 달리 하는 이 두 사건은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까? 협상 참가자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협상의 성패는 물론 때로는 한 나라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점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4가지 협상 원칙을
협상스쿨인 IGM의 도움을 얻어 정리해 보았다.
사례 1. 캠프데이비드 협정 : 역사의 흐름 바꾼 발상의 전환
레바논 피폭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수천 년 전 자신의 선조들이 살던 약속의 땅 가나안지역의 기존 주민을 내쫓고
나라를 세웠으나 시리아·이집트· 요르단 등 적대 국가에 둘러싸여 있어 풍전등화와도 같은 신세에 비유되던 이스라엘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지난 1967년이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전쟁을 벌였는데, 불과 6일 만에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시리아에서는
골란고원을, 요르단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으며 적대국에 둘러싸인 입지상의 열세를 단숨에 반전시킨다.
문제는 이 지역 소환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요구를 이스라엘이 거부하면서, 양측의 대립이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당시
싸일런스 밴스 국무장관을 통해 중재에 나서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이 땅에 양측이 집착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밴스 미 국무장관은 양국간 이해의 차이가 합의안 마련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이집트가 불과 6일 만에 소국에
영토를 빼앗긴 굴욕감 탓에 완전 반환을 요구한 반면, 이집트와의 완충지대가 절실히 필요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완전 반환하되, 그곳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해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한다.” 양측은 밴스 장관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미국이 중재한 이 협정이 바로 캠프데이비드 협정이다. 이 협정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독창적인 선택(creative option)이 필요하다는 것.
사례 2. 삼성전자 아시안게임 스폰서
선정 : 정해진 룰에 집착 말라
지난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회는 자동차·컴퓨터·텔레비전을 비롯한
80개 세부품목별로 공식 스폰서 지정에 나선다. 막대한 광고효과를 기대한 삼성전자는 공식 스폰서를 희망했으나, 문제는 막대한 스폰서 비용. 당시
삼성전자의 예산은 1억엔에 불과한 상황인 반면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요청한 공식 스폰서 비용은 5억~15억엔에 달했다.
당시
아시안 게임 펜스 광고(A-Board)를 통해 자사의 브랜드를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 노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삼성전자는 예산을 더 늘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갔을까.
“일본 시장을 조사해 보니 다른 가전제품 항목은 있는 데,
가스레인지는 없다. (가스레인지를 포함해) 우리가 81개 항목으로 범주를 넓혀서 입찰을 하겠다. 그러면 조직위원회도 수입이 늘어나고, 우리도
광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삼성전자가 내민 카드다.
스폰서 예산이 부족했던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성공적으로 협상을 타결하고 공식 스폰서가 되는 데 성공한다. 물론 당시 일본시장에서는 1억원을 내고 가스레인지 부문에서
삼성과 경쟁입찰을 할 회사가 없다는 상황을 감안한 승부수였다.
사례 3. 사할린 유전프로젝트 :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줘라
지난 1992년
러시아 정부는 사할린 유전개발 프로젝트를 공개입찰에 붙였다. 공사금액만 12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입찰에 세계적인 메이저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가했으며, 국내에서도 H사가 미국의 아마코(AMACO), 호주의 BHP와 공동으로 입찰에 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협상에 나선 H사와 미국의 아마코 간에 의사결정 방식을 놓고 갈등이 불거진 것.
협상대표에게 H사 오너는 모든 결정은
협상대표에게 일임하지만, 컨소시엄 내 의사결정 방식은 만장일치로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반면 아마코측 협상대표는 의사결정
방식은 과반수로 하라는 지시를 받아 양측의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한 인물은 국내의 한 협상 전문가였다. 그가 내린
처방전은 다음과 같다.
"만장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래도 안될 때 과반수로 한다. ”
그가 이러한
협상안을 제시한 까닭은 명확했다. 우선 H사는 만장일치제로 의사결정 과정서 소외될 가능성을 배재하려한 반면, 아마코는 H사가 자사의 주장만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과반수를 고집했다. 그는 양측의 이러한 우려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 협상의 첫걸음은 이처럼 상대가 원하는 바를
주는 것이다.
사례 4. 서희와 소손녕의 협상 : 상대방 복심을 정확히 파악하라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삼전도비는 열강에 둘러싸여 있던 조선의 비극을 상징한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물 취급을 받던 여진족들이 세운 후금이, 중원의
제패를 꿈꾸면서 명나라의 속방이던 조선 정벌에 나서자 큰소리만 치던 인조 정권은 두 달도 안돼 항복을 한다.
만주에서 베이징으로
통하는 유일한 관문이던 산해관을 치다 명나라의 전쟁 영웅 원숭환에게 패퇴해 숨을 거둔 누르하치의 아들 홍태시는, 당시 한강 상류의 나루이던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올린 인조에게 항복 사실과 더불어 후금의 덕을 기록한 비를 설립하게 하는 데, 바로 이 비가 삼전도비다.
이 사건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의 외교적 식견이 얼마나 탁월했는 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영토를 침입해 온 거란의 장수를 세 치 혀로 물리친
인물이 있었는 데, 바로 16세에 등과에 성공한 서희 장군이다.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한 소손녕을 만난 서희의 협상전술을
보자. 그는 우선 송과 친교하고 거란을 배격한 것은 강동 6주에 살고
있는 여진족들 탓으로 돌린다. 서희는 송과의 친교를 끊겠다는
약속으로 거란의 말머리를 돌리게 하는 한편, 강동 6주를 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얻어내며 당시 평양 이북을 거란에 떼어주자던 비둘기파나, 결사
항전을 외치던 매파 양쪽을 놀라게 한다.
물론 서희의 담판은, 송을 멸하고 중국대륙을 통일하려는 데, 배후의 고려가
눈엣가시였던 거란의 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본 덕분이었다. 거란의
입장에서는 송과 사대관계를 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상황에서, 이미 여진족이 살고 있고, 땅도 척박한 강동 6주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던
것.
협상은, 상대방이 얻을 이득을 집중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처: Economic Review, 2006.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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